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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ET단상]고객을 바라보는 기획자 되기

by 신일석 2008. 4. 21.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이라는 심리학 방법론이 있다. 나와 타인 간의 관계 안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으로, 크게 자아를 ‘나와 남이 아는 나’ ‘나는 알고 남이 모르는 나’ ‘나는 모르고 남이 아는 나’ 그리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로 구분하게 된다.

 한 회사의 휴대폰 상품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나는 이 이론과 상품기획 간의 접점을 생각하곤 한다. 상품을 이루는 것은 상품 제작자와 고객이며, 이러한 두 주체가 추구하는 가치 안에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술한 네 가지 영역을 기획 업무에 대입해 고객 중심의 상품기획에 대한 견해를 얘기해 보려 한다.


 먼저 ‘기획자와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는 지금의 상품에서 ‘반드시’ 실현해 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실현했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란 대부분 모호하고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기획자가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구체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객이 어렴풋이나마 필요로 해왔던 것일 가능성이 많다. 엄밀히 따지자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고객 가치에서는 약간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기획자가 생각하나 고객이 생각하지 않는 가치’도 존재한다. 이는 고객이 모르거나 알더라도 필요로 하지 않는 가치로, 지금의 상품에서 ‘선별적으로’ 실현해 내야 할 것이다. 사용 행태의 연구와 선행기술 탐색 등을 거쳐 고객이 모르는 가치를 찾아내 제공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핵심 지향점이다.


 이를 위해 과연 고객은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 기술이나 사업적 상황하에서 제공이 가능한지 등 여러 측면에서 고려가 필요하며, 이는 일반적인 기획 업무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일 중 하나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바일 서비스 중 하나인 ‘모바게타운’을 좋은 예로 꼽을 수 있다. 게임과 아바타, 홈페이지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2005년 2월 서비스 시작 이래 만 3년이 지난 현재 1000만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초거대 서비스로 성장했다. 이통망 개방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의 붐을 잘 이용해 초기 고객을 확보한 후, 이를 상거래와 광고 등으로 확장한 결과다.


 세 번째로 ‘기획자는 생각하지 않으나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도 존재한다. 이는 기획자가 기술이나 사업적 문제 때문에 알면서도 추구하지 않거나 아예 파악하지 못한 가치로, 다음의 상품에서 ‘가능한 한’ 추구해야 하는 가치다. 고객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고객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파악,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여기에서 핵심 지향점이다.


 LG전자가 이번에 새로 내놓을 ‘블랙라벨3’ 모델은 바로 이러한 잠재적 고객가치를 실현한 제품이다. ‘가볍고 얇으면서도 충격에 강한 휴대폰이 있으면 좋겠다’는 얼핏 들으면 모순에 가까운 고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휴대폰에서는 사용된 바 없는 고급 소재인 강화유리를 사용한 것이다. 제공하기 어려운 고객 가치일수록 올바른 방법으로 제공할 때 고객 만족도는 더욱 높아지며, 이는 고객의 목소리가 때로는 불합리하다고 느껴져도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은 ‘기획자도 고객도 생각하지 않는 가치’다. 이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거나 먼 미래에나 실현 가능한 가치라고 볼 수 있겠다. 필요로 하지 않는 가치를 논외로 한다면, 그 나머지 내용은 ‘꿈’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겠다. ‘충전이 필요 없는 휴대폰’ ‘귀걸이만 한 휴대폰’ ‘종이처럼 얇은 휴대폰’을 고객 앞에 내놓을 날을 그리며, 궁극적인 고객만족을 상상하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야말로 기획자가 두근거리며 품고 있는 꿈이니까.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도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상두환 LG전자 상무(MC사업본부 상품기획팀장)sdw123@lge.com

출처 :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804180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