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2006년 07월 07일
"'스노우랭크(SnowRank)'는 실패했다."
기자의 생각이 아니다. 첫눈의 창업자인 장병규 사장이 실토(?)한 말이다.
NHN의 첫눈 인수는 적잖은 이슈로 다뤄졌고, 이를 보는 시각도 엇갈렸다. 어떤 이는 "신생 벤처기업 대표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 하고, 어떤 이는 "'한국형 구글'이란 창업 정신까지 팽개쳤다"고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관심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던 지난 6일 오후.
시내 강남 한 커피숍에서 장 사장과 만났다.
'스노우랭크(SnowRank)'가 실패했다는 그의 실토는 이 자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말은 잘 이해되어야 한다.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장 사장과 마주앉아 그의 결단을 들을 자격이 없다. 이 실토는 첫눈과 장 사장, 첫눈 직원, 그리고 한국 벤처기업의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푸는 단초와 같은 것이다.
'스노우 랭크'는 첫눈이라는 검색 서비스의 사상이자, 철학이고, 기술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검색의 대상을 내부 DB가 아니라 인터넷 전체로 한다. 이른바 '바다 정책'이다. 또 네티즌이 중복으로 찾는 단어가 의미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눈덩이' 이론이다.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지듯 검색에 있어서도 많은 네티즌이 자주 찾는 단어에 가중치를 두는 검색 기술이 더 유용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
장 사장은 그 '스노우 랭크'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실패라는 말은 '제한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서비스가 나온 지 6개월이 됐지만 네티즌 반응은 신통치 않잖아요." 장 사장의 이 말 또한 제한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시장에서만 통하지 않았다고….
물론 제품과 서비스가 일정한 기간동안 일정한 시장에서 통하지 않으면, '완전한 실패'로 인식될 가능성이 더 많다. 실제로 잠깐의 실패 때문에 사라져버리는 제품과 서비스도 많다. 그런데 첫눈과 스노우 랭크는 그렇지 않다.
이 점에서 우리는 첫눈과 한국의 벤처기업에 대해 할 말이 생긴다.
스노우랭크가 완전한 실패작이라면 네이버는 바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첫눈 인수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진 구글 또한 멍청한 기업이 된다. 세계 최강의 기업들이 바보나 멍청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스노우랭크를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스노우랭크는 실패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진 게 아닌 것이다.
시장에서 실패해놓고도 궁극적으로는 지지 않는 그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힘의 실체를 찾아내는 게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장 사장은 말한다. "노동자와 인재는 다르다." 노동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인재는 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첫눈에는 인재가 모여있고, 그래서 노동조합이 없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첫눈에서는 인력 한 명 한 명이 노동조합의 파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인력 한 명만 어깃장을 놓아도 업무가 마비될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경영진이 한 명 한 명에 대해 끊임없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 사장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크리에이티브'를 말하기 위함이다. 현재(레드 오션)를 부정하고 미래의 가치(블루 오션)를 창출하는 힘. 그것이 바로 벤처의 힘이고, 그것은 노동자가 아닌 인재한테서 나온다는 것이다. 또 첫눈이 하고자 했던 것 또한 이것이다.
장 사장은 "구글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첫 번째 묻는 질문은 인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들 또한 벤처로 출발한 글로벌 기업이고 무엇이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인지 안다는 이야기다.
아마 장 사장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벤처 경영자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 자금은 없고, 그래서 우수 인력을 채용할 형편은 아니고…. 그게 우리 벤처기업의 가장 큰 애로 아니겠는가. 이 대목에서 장 사장만의 경영 비법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말할 때가 됐다.
사실 장 사장은 여느 벤처 창업자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KAIST 출신으로 우수 기술인력에 대한 유리한 인적네트워크를 갖췄고, 네오위즈에서 번 돈만 해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췄다고 모두가 '크리에티브 경영'을 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건은 그야말로 조건일 뿐이지 그것이 곧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나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즉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보는 검색 사업에 50억을 베팅하는 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장 사장에겐 무엇인가 특별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장 사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토지, 노동, 자본을 생산의 3요소라고 하죠. 삼성은 여기에 인재를 덧붙여 4요소라고 한다더군요. 그런데 우리 같은 닷컴 벤처기업에 토지가 필요할 이유는 없잖아요. 자본도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인재만 있다면 자본은 따라붙게 돼 있죠." 그렇다. 거듭 말하지만 그의 키워드는 인재이다.
그는 인재, 그 인재가 내놓을 크리에이티브를 믿고 50억을 베팅한 것이다.
또 그 크리에이티브는 시장에선 실패했지만 350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더 큰 시장에서 부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인재'들은 장 사장의 무엇을 믿고 몰려든 것일까.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공자는 말했다. 장 사장 또한 이 말을 믿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람(인재)이 필요하고, 필요한 사람은 모셔와야 한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삼고초려했던 것처럼. 장 사장 또한 알음알음 알게 된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
문제는 인재를 모신 다음이다. 모든 창업 멤버들이 '도원결의'를 하지만, 그 결의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허풍선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창업 멤버간의 암투, 직원들의 잦은 이탈, 심하게 보면 그것은 우리 벤처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 질곡의 역사는 대개 잘못된 '논공행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장 사장은 창업 당시부터 이 문제에 치밀하게 대비하였다.
성공의 결과물을 인재들과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대개 벤처에서 인재 영입을 위해 '스톡옵션'을 제공한다. 성공할 경우 그 과실을 나누기 위한 최선의 프로그램이 '스톡옵션'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 스톡옵션으로 과실을 챙긴 경우는 드물다. 성공한 경우가 드물기도 하려니와, 스톡옵션이 기업 재무와 주가에 악영향을 주는 단점도 있기 때문.
장 사장에겐 자사주 또한 대안일 수 없었다. 그동안 기업공개 전에 임직원에게 자사주를 준 기업은 많다. 이로써 임직원의 재산을 불려준 기업도 없지 않지만, 자사주가 폭락하는 바람에 이른바 '노예문서'로 변한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임직원은 회사에서 차입해 자사주를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과적으로 주시가격이 그보다 밑돈 경우가 허다한 것. 그래서 돈을 갚을 때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회사원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장 사장의 복안은 자신의 구주를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장 사장은 창업당시 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주를 나누어 준다해도 경영권 방어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장 사장은 직원들한테 약속했다. 최소한 10%의 지분을 넘길 것이라고. 그런데 인재는 역시 인재였다. 장 사장은 직원들의 열의와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NHN에 매각하기 전에 이미 30% 이상의 지분을 직원 몫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장 사장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빛을 발하게 된다.
장 사장은 별도의 장부를 통해 '주식 논공행상'을 했다. 이점이 중요하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창업 초기에 순자산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다 탄력을 받으면서 순자산가치가 자본금 이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 때부터 자본 투자에 대한 성공의 과실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의 과실이 생기기 전에 지분을 넘기면 지분을 받은 사람은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분만큼 동시에 져야 한다. 장 사장은 혹시 모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첫눈의 직원이 분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도의 장부를 통해 '주식 논공행상'을 한 뒤, 성공이 보장된 뒤에 그것을 현실화시키기로 한 것.
직원으로서는 실패했을 경우에 부담은 없는 대신, 성공했을 경우에는 '주식 논공행상'의 결과물을 그대로 받는 전혀 밑질 이유 없는 프로그램.
장 사장은 실패의 결과는 혼자 떠안고, 성공의 결과는 나누기로 한 것이다.
"저야, 네오위즈에서 번 돈이 있기 때문에 (실패해도) 참을 만 하지만, 첫눈의 직원에게까지 그것을 (지분투자를 통해)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장 사장의 '인재 유지 프로그램'은 진짜로 빛을 발했다.
첫눈 임직원 60명은 결과적으로 100억원 가량의 과실을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노우랭크 세계화'에 걸었던 그들의 꿈과 이상은?
사라진 것일까?
그 대답은 이제 네이버와 장 사장, 그리고 첫눈의 인재들이 다시 찾아야 한다. 현실 시장에서 장 사장과 첫눈의 인재만으로는 '스노우랭크'를 세계화하는 게 역부족이었다. 이제 여기에다 네이버라는 천군만마를 다시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의 꿈과 이상은 사라졌다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 사장은 말한다.
"매각하기 전에 NHN으로부터 이것만은 확인했습니다. NHN은 어떤 형태로든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NHN 경영진은 한 번 해외진출에 실패해도 거듭거듭 다시 시도할 것이라는 점 말이지요."
그들의 꿈과 이상은 무대를 바꿔 다시 내달릴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 사장은,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벤처기업이라는 속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전략가였다. 또 사람(인재)을 이해할 줄 아는 탁월한 리더였다. 무엇보다 나만이,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색다른 것을 찾아내고야 마는 훌륭한 장인정신의 소유자였다. 또 진퇴의 시운까지 냉정히 깨달을 줄 아는 지장(智將)이었다. 그것이 첫눈에 반영되었고, 실패해도 지지 않는 첫눈의 힘으로 발휘됐다. 한국 벤처사는 첫눈의 이점을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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